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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01 19:41
[인물포커스] 거룩한 마음
 글쓴이 : 법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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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편. 《 거룩한 마음 》


 

1. 사랑함


사랑은

소유하려는 욕망이 없는 것.

궁극적으로는 소유물로 소유자도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이것이 최상의 사랑

 

나를 내세우지도 생각하지도 않는 것.

이른바 나란 것이 한갖 착각에 불과한 걸 잘 알기에

사랑은 선택하지도 제외하지도 않는 것.

 

선택과 제외가 싫음·혐오·반감 등

사랑의 상대적인 것들을 낳는다는 걸 잘 알기에

사랑은 일체 모든 것들을 감싸는 것.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거나

땅에 살건 물에 살건 공중에 살건 간에

사랑은 치우침 없이 모든 중생들을 감싸는 것.

쓸모 있고,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라 해서

더 많이 쏟는 일 없이

 

사랑은

일체 모든 것들을 감싸는 것,

숭고하든 저열하든, 선하건, 악하건

숭고한 선한 이들에겐

그 사랑의 마음 절로 솟아나니 감싸고

저열하고 악한 이들에겐

이들이야 말로 사랑을 필요로 하기에

감싸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 속에

선의 씨앗이 죽은 것은

그것이 자랄 따뜻함을 잃고

이 비정한 세상의 차가움에

얼어버렸기 때문인 것을

사랑은 일체 모든 것을 감싸는 것


우리 모두는 윤회의 바퀴 속에서 함께 도는 동반자이며

따라서 우리 모두 똑같이 괴로움의 멍에를

벗어나야 할 존재라는 걸 잘 알기에

 

그러나 사랑은 불태우듯 괴롭히고

말려 죽이는 감각적 불꽃이 아니다

그런 불꽃은 치유가 아닌 더 큰 상처를 남기고

또 지금은 불타오르다가도 다음 순간

사그라지고 나면 이전보다도 더한

추위와 괴로움을 남기기에

 

그래서 사랑이란

괴로워하는 중생에게 부드러우면서도

확고한 손길 같은 것

항상 연민의 정이 가득하여

그 만나는 사람이 누구든 간에 흔들리지 않는다.

 

사랑,

그것은 괴로움과 열정의 불에 타고 있는 자에게

위로를 주는 침착함이고

외로움이라는 차가운 사막에 던져진 자에게는

생명을 넣어주는 온정이며

무자비한 세상의 된서리에 떨고 있는 자.


또 끝없이 도움을 요청하다가 끝내는 깊은 절망에 빠져

텅 비고 메말라 버리듯이 된 자에게는

생명을 나누는 따스함이어라.

 

사랑,

그것은 숭고하고도, 장엄한 마음이자

깊이 알고 이해하고 언제라도

도울 태세가 되어 있는 지성이다.

 

사랑,

그것은 용기 자체이자,

또 용기를 부여하는 것 이야말로 최선의 사랑.

 

사랑,

그것은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듯

마음의 해탈이며

가장 숭고한 아름다움이어라.

 

그렇다면

사랑을 나타내는 최상의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즉 그분 세존 부처님께서

찾아내시고 몸소 밟으셔서 완성을 이루신

그 길을 이 세상에 알려주는 것

 

2. 더불어 아파함


세상은 괴로움에 허덕이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눈과 귀를 틀어막고 있다.

평생토록 줄기차게 흘러내리는

눈물의 개울을 보지 않고,

이 세상에 끊임없이 퍼져가는

고통에 찬 울부짖음을 듣지 않고 있다.

 

자기 자신의 보잘 것 없는 기쁨과 슬픔에

가리어서 눈멀고 귀먹어 있다.

 

이기심에 사로잡혀

마음은 완고하고 편협해져 버렸다.

완고하고 편협해서야 어떻게 보다 높은

목표를 향해 노력해 볼 수 있겠으며

고(苦)에서 해탈하는 길은 오직

이기적 갈애에서 해방되는 수밖에

달리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더불어 아파하는 마음은

그 무거운 빗장을 벗겨내고

해탈의 문을 활짝 열어

편협한 마음을 온 세상만큼이나

넓게 만들어 준다.

 

더불어 아파함은 마음을 짓눌러

마비시키는 무거운 짐을 제거하고

자아라는 밑바닥 세계에서 떨쳐 일어나

비상하도록 날개를 달아준다.

 

더불어 아파하는 마음으로 인해

우리는 개인적으로 고(苦)에서 벗어나 있는 때라

할지라도 고(苦)의 진상을 역력히

마음에 새겨 간직할 수 있다.

 

이렇듯 더불어 아파하는 마음을 통해

고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에

언제 별안간 고통이 우리에게 닥쳐도

태연히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길러준다.

더불어 아파하다 보면

때로는 우리 자신의 처지보다

훨씬 더 고된 남들의 생활을 목격하게 되고

그래서 자신의 운명을 감수할 수 있게 된다.

 

보라!

슬픔과 고통의 짐에 짓눌린 인간과 축생들

저 중생들의 끝없는 유랑대열을!

저들 하나하나가 지고 있는 짐,

바로 그 짐을 우리 역시 지나간 세월

헤아릴 수 없이 긴 윤회·전생을 통해

내내 실어 날라 오지 않았던가.

이 사실을 명심하라

그리고 그대 마음을 연민으로 활짝 열라!

 

그렇다.

우리의 운명도 다시 이렇게 비참하게 될는지 모른다.

지금 더불어 아파하는 마음을 품지 않은 사람도

언젠가는 애타게 그 마음을 찾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생의 위대한 철칙이다.

그런 줄 알고 자신의 마음을 끊임없이 감시하도록 하라!

무지에 빠져 미망 속에 헤매고 있는 중생들은

이 고통에서 저 고통으로 분주히 싸다닐 뿐

고통의 진정한 원인도, 고통에서 헤어날 길도 모르고 있다.

 

보편적 고의 진리에 대한 이와 같은 통찰에서부터

더불어 아파하는 마음이 끝없이 솟아 나오는 것이며

몇 날의 동떨어진 고의 경험이

그런 마음의 참된 원천이 될 수는 없다.

 

그러기에 지금 한때 행복할지는 몰라도

미망에 빠져 나쁜 마음으로 행동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까지도 우리는 연민하는 마음을 가진다.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위에서

비탄에 찬 그들의 미래를 내다보게 되기에

더욱 연민의 마음이 솟는 것이다.

 

현자는 고통 받는 사람과 아픔을 같이하나

그로인해 자신을 고통에 빠뜨리지 않는다.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연민의 마음으로 충만해 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변함없이 여전히 평화롭고 의연하다.

그렇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남을 도울 수 있을 것인가!

 

이와 같은 ‘더불어 아파하는 마음’이

우리 마음에도 일어나기를!

더불어 아파함.

그것은 숭고하고도 장엄한 마음이자

깊이 알고 이해하고 언제라도

도울 태세가 되어있는 지성이다.

 

더불어 아파하는 마음(동정),

그것은 용기 자체이자 또 용기를 부여하는 것

이야말로 최상의 동정이다.

 

그럼 더불어 아파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최상의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

즉 그분 세존 부처님께서 찾아내시고

몸소 밟으셔서 완성을 이루신

그 길을 이 세상에 알려주는 것.

 

3. 더불어 기뻐함


그대 마음 열어

더불어 아파할 뿐만 아니라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라.

무릇 생명 있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이 과연 몇 줌이나 되겠는가.

 

중생에게 할당 된 행복과 즐거움

그 몫은 정말 너무나 적구나.

그 조그마한 행복이 중생에 미칠 때마다

마땅히 그대,

그들과 함께 행복을 같이 해야 하리라.

 

한 줄기의 빛이

어두운 삶 가운데로 뚫고 들어와

그들 마음을 싸고 있는 어둡고 음산한 안개를

조금이라도 걷어내 준다면 그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남의 행복을 자기 것처럼 즐겨 나누어 가짐으로써

그대의 삶도 기쁨을 늘려 갈 것이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행복의 순간에 사람의 얼굴이 변하여

기쁨으로 환하게 빛나는 모습을


또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기쁨 때문에 사람들이 평소 능력을 초월해서

고상한 포부와 위엄을 향해 분발하는 모습을

그러한 경험을 할 때마다

그대 가슴 더없는 환희로 가득하지 않았던가?

 

이와 같이

남을 행복하게 해주고

기쁨과 위안을 안겨주어서

더불어 기뻐하는 경험을 늘리는 일은

그대 자신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람들에게 참된 기쁨을 가르쳐 주자!

많은 사람들이 그걸 배우지 못해 모르고 있다.

인생은 비록 서러움으로 가득 찬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기쁨의 원천이기도 하다.

대다수가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따름일뿐,

사람들에게 자신의 내면에서

참 기쁨을 찾아 누리도록 하자.

또 남의 기쁨도 같이 향유하도록 가르쳐 주자!

그들의 기쁨을 더욱 드높은 곳으로

펼쳐 나가도록 가르쳐 주자!

 

고귀하고 숭엄한 기쁨은

저 크게 깨치신 분의 가르침과

무관한 것이 결코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간을 울적하게 한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법은

한걸음 한걸음보다 청정하고 고결한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진리의 말씀인 것이다.

 

고귀하고 숭엄한 기쁨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

길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고뇌에 이그러진 사람이 아닌

기쁨을 향유하는 사람만이

차분하고 고요한 상태를 발견해서

결국 정관적 마음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평화롭고 침착한 마음만이

해탈의 지혜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남의 기쁨이 숭엄하고 고귀한 것일수록

우리의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 역시 더 의미 있는 것이 된다.

 

그들이 고귀하게 살게 되면

현재에 그치지 않고 내내 생생의 행복까지 보장되니

어찌 우리가 더불어 기뻐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우리가 남들의 기쁨을 함께

나누어야 할 보다 숭고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법을 믿기 때문이며

법을 이해하기 때문이며

법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기뻐함

그것은 숭고하고도 장엄한 마음이자

깊이 알고 이해하고 언제라도

도울 태세가 되어 있는 지성이다.

 

그것은 용기 자체이자 또 용기를 부여하는 것

이야말로 최상의 기쁨,

그렇다면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최상의 방법이 무엇일까?

 

그것은

괴로움을 소멸에 이르는 길

즉, 그분 세존 부처님께서 찾아내시고

몸소 밟으셔서 완성을 이루신

그 길을 이 세상에 알려주는 것.

 

관세음보살

 

 

다음은 제 30편. 《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아니한다 》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