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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03 19:03
[인물포커스] 산중의 밤은 더 좋다
 글쓴이 : 법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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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편. 《 산중의 밤은 더 좋다 》


 

산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면 눈에 보이는 귀에 들리는 마음에 와 닿는 모든 것들이 법이요 진리임을 터득하게 된다.

 

억겁의 비밀을 간직한 채 침묵하는 산은 나처럼 말없이 침묵하며 살라 하고, 산 계곡을 있는 듯 없는 듯 흐르는 실개천은 항상 나처럼 낮은 곳으로 겸손하게 살라,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게 하라, 온갖 더러움을 껴안고 가는 자기희생을 말하는 듯하다.

 

이런 산 중을 유유자적 산책이라도 할라치면 산등성이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묻혀오는 진한 송진 냄새와 바람과 적요를 만나게 된다. 이처럼 한점 욕심이나 욕망이 자리하지 않은 산중에서 무엇을 갈구하고, 무엇을 탐욕 하겠는가?

 

욕심으로 배운 지혜라면 털어내는 지혜를 배우고 미움으로 언 마음이라면 용서의 강물로 흘려보내야 한다는 진리의 말을 저절로 가슴에 가득 담게 된다.

 

온갖 삼라만상이 검은 먹물을 풀어 놓은 듯 까만 밤에도, 황후의 보석처럼 빛나는 밤하늘의 영롱이는 별들, 계절이 봄이라도 될라치면 피를 토하듯 울어 외는 귀촉도의 울음소리하며, 문풍지 사이를 기웃 거리다 달아나는 미풍의 보드라움이 마음마저 여려지게 한다.

 

사는 게 무엇인가?

한낮 부질없는 저 바람결 같은 건 아닐까?

 

강자로 살고 싶으면 비정을 먹고 살라, 부자로 살고 싶으면 비정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한다. 이것이 진리라며 미워하고 시기하는 죄업으로 가득 찬 중생들의 삶은 얼마나 부질없는 것들인가?

 

한 잎 바람에 흔들림 같은 짧고도 미미한 것들이 아닌가? 강자가 되고 부자가 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저승길에 입고 가는 수의에는 주머니조차 없지 않은가? 무엇을 가지고 가려는 것인가?

 

석가세존 역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덧없음에 온갖 부귀영화와 처자식을 버린 채 출가하여 6년간의 수행에 들어간 것이리라.

 

산에서 맞는 새벽은 더욱 신선하고도 정갈하다.

맑고 푸른 영혼에 내리던 별빛이 사라지고 동쪽 산등선을 넘어 붉게 타오르는 선열의 망상, 잠든 자는 깨어나게 하고 깨어있는 자는 자각하게 하기에 충분한 아침이다.

 

손을 내밀어 움켜잡으면 보드라운 햇살이 손 안에 그득 잡힐 것 같은 산중의 아침을 맞으며 또 하루를 안고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산중에서 생활하다 보면 사시사철 마다 다른 산의 묘미가 있다. 봄에는 따스한 햇빛에 얼었던 동토의 땅에서 생명이 움트는 자연의 신비함, 푸르게 물오른 나뭇가지 사이로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새 소리는 세상의 그 어떤 음악보다도 아름답다.

 

산에는 보는 나뭇잎들은 5월이 가장 아름답다 연초록 잎들이 마음마저 싱그럽게 연초록으로 물들일 것 같은데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비단결 같은 바람결은 예술품이 따로 없다.

 

여름 산은 더 깊은 맛이 있다.

세속의 온갖 공해와 탐욕에 찌든 것들이 여름 산은 정갈하게 씻어 내 준다. 거기다가 계곡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세족이라도 하고 있노라면 어디에서 인가 진한 산 더덕 냄새가 진동한다.

 

가을 산은 참 장관이다.

오색물감을 풀어 색칠을 한 것처럼 울긋불긋한 단풍하며 풍성한 산과들 사이로 겨울 준비를 하는 다람쥐의 발길이 무척 분주함을 보게 된다.

 

머루나 산포도가 익어서 약간 시들해져 있다. 몇알을 떠서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보면 입 안에 가득 고이는 신선함, 눈앞에 펼쳐지는 구절초의 자태가 청결하고도 순결해 보인다.

겨울산은 더 좋다.

겨울이 시작되면 산에는 낙엽이 수북수북 쌓인다.

발로 걷노라면 바스락 거리며 부서진다.

 

시인은 이 소리를 낙엽은 발로 밟으면 영혼처럼 운다고 노래했다.

산중에 눈이라도 내리면 그 어떤 화가의 붓끝으로도 그려내지 못 할 장관을 이룬다. 나뭇가지 마다 하얀 눈들이 내려앉기 시작하다가 온 산야가 순백으로 변한다.

 

세상의 온갖 탐욕이나 추함을 전부 덮어 버린 듯 정갈하다. 이런 겨울 산에는 산짐승들이 먹이를 찾아 처소로 내려왔음을 발자국을 보고 알 수 있다.

 

죄 많은 중생이나 저들 산짐승이나 잠시 왔다가 가는 것이거늘 내 것이 어디 있고 네 것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먹던 시래기나 옥수수 등을 발자국이 있는 곳에 놓아둔다. 다음 날 아침에 보면 말끔하게 먹어 치우고 갔다. 토끼, 고라니 어떤 녀석이 와서 먹었을까?

 

누가 먹었으면 어떠하랴, 마음만은 훈훈해진다.

이렇게 산 생활을 즐기는 나이다 보니 나는 천생 태어나기를 중 팔자로 태어났나보다.


나무관세음보살.



다음은 제 3편. 《부처보다 남편 먼저 섬기시오》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