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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02 23:47
[인물포커스] 어머니 그 위대한 이름
 글쓴이 : 법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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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편. 《 어머니 그 위대한 이름 》

 

 

불타의 인류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은 자비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모성애이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말한다.

 

엊그제 어버이 날이어서 우리 선원에서도 어르신들에게 꽃을 달아 드리고 마음의 선물을 드렸다.

 

옛 5~60년 때에는 먹고 사는 일이 시급하던 시절이 있었다. 해마다 보릿고개가 오면 못 먹어 누렇게 뜬 자식 놈의 얼굴을 보며 하늘이 원망스러운 듯 부모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던 시절이다.

 

그러다가 70년대에 들어서자 풍족하지는 않지만 먹는 문제는 해결되었다. 말 타면 종 잡이 두고 싶어진다고 했다. 이 땅의 아버지들이 들고 일어났다. 자식은 여자 혼자 낳았느냐? 왜 어머니날만 있고 아버지날은 없느냐? 그리고 여자만 가슴에 꽃달고 으스대는 모습하며 참 가관이네....

 

정부에서는 고민이 생겼다. 머리까지 잘라 수출하고 봉제공장에서 밤새워 재봉틀을 돌리며 수출 전쟁을 하는데, 어머니날 아버지날 따질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 어차피 한 이불 덮고 자는 부부 아닌가? 합쳐 버리자. 해서 생긴 게 어버이 날이다. 1973년의 일이다.

 

우리 어머니들은 자식을 품에 안고 있다가 맹수나 무서운 일이 생기면 아이고머니 하면서 아이를 품에 안고 돌아 앉는다. 차라리 나를 잡아 잡수라는 것이다.

 

6.25 동족상잔의 전쟁 때의 이야기 이다.

혹한의 추위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추위가 춥고 매웠다. 북진하던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후퇴했다. 1.4후퇴이다.

 

영국군 장교가 쑥고개 지금의 송탄시를 지나는데 다리 한 쪽에 여인 하나가 그 추위에 윗옷을 벗고 바람을 등진 채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것이었다. 전쟁 중에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 추위에 얼어 죽겠다 싶어 차에서 내려 만져보니 몸은 꽁꽁 얼어 옆으로 픽 쓰러지는데 품안에서 엄마의 옷에 덮인 갓난아기가 잠들어 있더라는 것이다.

 

추위와 굶주림에 자기는 얼어 죽지만 자식만은 살리기 위해 사람이 다니는 다리목에서 얼어 죽은 어머니, 허기 진 육신에 심장까지 얼어 들어가는 그 고통 속에서도 자식을 살리겠다는 그 마음이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다.

 

역사에 기록된 훌륭한 인물의 뒤에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다.

 

불을 끄고 떡 썰기와 글쓰기를 했던 천하명필 한석봉의 어머니, 자식 교육을 위해 이사를 세 번이나 했던 맹모삼천지교의 맹자 어머니, 전 인류가 감사해야할 별명왕 에디슨의 어머니의 자식 교육도 훌륭하다.

 

에디슨은 초등하교 일학년 때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고 가르치자 하나 더하기 하나는 하나라는 것이었다. 물방울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하나이고, 진흙 덩어리 하나에 하나를 더해도 하나가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은 에디슨의 어머니에게 당신의 아들은 저능아라 못 가르치니 데려가라고 하자 에디슨의 어머니는 내아들은 저능아가 아니라 천재일지 모른다며 집에서 교육을 시켜 전 인류가 감사하는 발명왕이 되게 하였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또한 대단한 기개였던 모양이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아침 9시 30분 하얼빈 역에서 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을 저격하여 민족의 기개를 드높였다.

 

간교한 일제는 이등박문의 제삿날인 1910년 3월 26일 숨진 시간에 맞춰 여순 감옥에서 사형을 집행하였다.

 

안 의사의 어머니는 아들의 형이 확정되자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며 입고 갈 마지막 수의를 지었다. 그리고 수의 속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서 넣었다.

 

“아들아, 이 세상에서 너와 내가 다시 만나는 일이 없기로 하자. 행여 네가 늙은 어미보다 먼저 가는 것을 마음 아파한다면 그것은 이 어미를 크게 욕되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다음 세상에서 만나자꾸나.”

 

웬만한 어머니 같으면 사형 집행 전에 아들 얼굴 한 번 더 보기 위하여 면회 가서 울고불고 했을 터인데 역시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에서 황이나 황제가 아닌데 국장으로 장례를 치룬 사람은 단 한 사람 빅토 위고이다. 그는 우리에게 장발장으로 잘 알려진 레미제라블, 노트르담의 꼽추 등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위고가 일곱 살 대 천문학교수의 이웃으로 이사하자 천문학교수는 어린 위고가 자기 집 사과를 딸까봐 걱정을 했다. 이에 위고의 어머니는 자신 있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 아들을 남의 집 사과나 따는 아이로 교육 시키지 않겠습니다.”라고.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 대통령이 되어 어머니를 대통령 궁으로 모시려 하자 대통령과 농부가 살집은 다르다며 대통령 궁으로 가지 않은 워싱턴의 어머니!

 

지구촌의 황제를 꿈꾸었던 나폴레옹의 어머니. 아들이 황제 자리에서 쫓겨나 섬에 유배 되자 평소 생일 날 아들이 주었던 용돈으로 아들 생일에 선물을 사가지고 섬으로 찾아 엄하고도 단호하게 말 한다.

 

아들아!

여기를 나가라. 그래서 황제로 당당하던 너의 숙명을 따르도록 하라. 너는 이 섬에서 죽도록 운명 지워지지 않았다. 아들은 용기를 내어 섬을 탈출하여 재기를 시도 한다. 그런 나폴레옹의 어머니는 아들보다 16년이나 늦게 86세에 세상을 떠났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고 했으니 얼마나 아프고 저린 삶을 살았을까?

 

독일이 통일되기 전 서독에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런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었다고 한다. 탐욕의 사바세계에서 사는 중생들이고 보니 자연 갖가지의 답이 나왔다.

 

돈과 권력, 애인이나 예술품에 향수 심지어 어떤 여인은 자기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라는 대답까지 다양했다.

 

정답은 초등학교 2학년 소녀였다.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동자였다. 이렇게 어머니는 자애롭고 인자하다. 역사의 위인에 어머니는 사랑이고 희생이다.

 

나는 종교보다 더 거룩한 사형수 어머니를 알고 있다. 아들이 순간의 잘못으로 사형수가 되었다. 어머니는 그 순간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해 헌신하기로 한다.

형무소 앞에서 떡을 팔아 매일같이 아들 면회를 하고 사식을 넣어 주었다. 그리고 저녁이면 서투른 글씨로 내 자식을 어미 품으로 돌려보내 준다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자식으로 만들겠다는 탄원서를 쓰고 또 썼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아들 역시 죄를 뉘우치고 그림 공부를 하여 수상하는 등 모범수가 되고, 사형에서 무기수로 다시 감형으로 출소하여 사회에서 화가로, 가수로 교도소의 교화위원으로 다시는 자신과 같은 죄를 짓지 않도록 헌신적 교화 활동을 했다.

 

이것은 오직 어머니의 사랑이 오직 자신을 버린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식 앞에 어머니의 모정은 불보다도 더 뜨겁고 바다보다도 더 깊고도 넓다.

 

나무관세음보살!!

 

 

다음은 제 2편 《산중의 밤은 더 좋다》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