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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8-07 19:02
[사찰탐방] 그절에 가고싶다 - 봉암사
 글쓴이 : SBC불교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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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의 정신, 봉암사

○ 종 파 : 대한불교 조계종 ○ 성보문화재 : 26 개
○ 전화번호 : 054-571-9088

○ 소 재 지 :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원불리, 희양산 자락

○ 위 치 : 봉암사(鳳巖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485번지 희양산(曦陽山)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봉암사는 특별수도원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5년 (서기 879년)에 지증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지증대사가 심충이란 사람의 권유로 현봉암사 자리를 결정하고 그 자리에 있던 큰 못을 매몰하려 하는데 큰 용이 서식하고 있는지라 지증 대사는 신통력으로 그 용을 구룡봉으로 좇고 매몰하여 그 자리에 봉암사를 세웠다고 한다. 백운대에 계암 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봉암사를 창건할 당시 날마다 그 바위위에서 닭 한마리가 새벽을 알렸다고 한다. 그후 지증국사의 문손들이 국사의 뒤를 이어 중수하였는데 웅장하고 예술의 극치를 다한 건물이 즐비했다고 한다. 중창 80년후에 극락전 한동만 남기고 전소되고 말았다.
   
그 후 고려초에 정진국사가 주석하게 되어 중창하여 옛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극락전은 목탑형으로 건조된 건물로서 경순왕이 피난때 원당으로 세운 유서깊은 전각이라고 한다. 중간사적은 기록을 전하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여러번 증수를 거듭 하였다. 순종 원년에도 화재로 대웅전이 소실되었으며 1956년 4월 7일에도 큰화재로 소실되었다. 봉암사는 신라 선문구산 중의 하나로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한 유서깊은 사찰인 덕분으로 한때 폐사 위기에 까지 이르렀으나 이제는 증창을 거듭해 옛모습을 되찾고 많은 수도승이 운집하여 수도에 전념하고 있다.
   
현재 대가람 증수 불사가 수삼년째 계속되어 1992년 6월 4일에 대웅전이 완성되었다. 대웅전은 108평의 웅장한 건물이며 삼존불을 모시고 목각형 또한 뛰어난 솜씨의 수작으로 매우 장엄하다. 희양산 일대는 경관이 수려하여 고운 최치원선생의 유적이 여러곳에 전한다. 또한 희양산문이라 하면 당나라에 까지 그실력과 수준이 인정된 선지식의 교단이라고 높이 평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 봉암사는 조계종 스님들의 선수련장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으나, 특별히 매년 부처님오신 날만 개방한다. 봉암사는 전통적으로 뛰어난 선승들을 많이 배출해 중국에서도 봉암사의 선승들을 높이 평가했다는 말이 전한다고 한다. 이 봉암사 역시 중창과 소실을 반복했는데 사세가 컸을 때는 무려 3,000명의 승려가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현재 봉암사의 문화재로는 보물 제 171호인 봉암사 정진대사원오탑, 보물 제 172호인 봉암사 정진대사원오탑비, 보물 137호인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 보물 제 138호인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 보물 제 169호인 봉암사 삼층석탑 등의 보물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재가 있다.

● 관람 포인트 ●
   
1) 봉암사 일주문인 봉황문에서 남훈루로 이어지는 작은 길을 걸으며 댓잎소리와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정갈하게 하자.
2) 천년 전,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깨침을 위한 선승들의 용맹정진을 마음으로 느껴보자.

3) 봉암사는 ‘봉암사 결사’가 이루어진 결사도량으로 대한 조계종의 종풍을 이루는 뿌리가 되었다. 봉암사 결사가 따르고자 했던 ‘부처님의 법’을 생각해 보자.

4) 태고선원 뒤로 솟아있는 희양산의 흰 암봉 바라보기.
5) 봉암사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백운대의 너럭바위에 앉아 마애불의 원만한 얼굴 바라보기

● 찾아오는 길 ●
   
■ 자가용
중부 내륙 고속도로 문경새재IC - 3번 국도 마성 방면 15km, 모곡 - 901번 지방도 12km, 가은읍 괴산 방면 922번 지방도 12km, 도태교 희양 분교에서 우회전 - 봉암사 방면 4km 봉암사
■ 대중교통
문경시나 가은에서 봉암사 행(3회) 이용 / 가은읍에서 택시 이용